심야 라디오 #16 - 비상계단
새 아파트 생활수칙에는 이상한 문장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. ‘비상계단은 짝수 층에서만 이용할 것.’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날, 나는 11층에서 계단으로 내려갔다. 한 층을 내려왔는데 벽에는 다시 11층이라고 쓰여 있었다. 계단문을 열자 우리 집 현관이 나타났다. 다시 내려가 문을 열 때마다 같은 현관이 나왔다. 대신 문 앞의 내 신발이 한 켤레씩 늘어났다. 새로 생긴 신발에는 방금 묻은 계단 먼지가 남아 있었다. 다섯 번째 문을 열자 신발이 다섯 켤레 놓여 있었다. 불 꺼진 거실에서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. 현관 안에서 나와 똑같은 다섯 명이 일어났다.